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사크빌 (문단 편집) === 7년 전쟁 === 7년 전쟁이 발발한 후인 1758년 1월 추밀원에 들어간 사크빌은 같은 해 제4 연대를 부여받고 프랑스 해안에 대한 영국의 습격 작전을 지휘했다. 비록 프랑스 해안의 생 말로 마을을 점령하는 계획은 실패했지만, 사크빌은 적지를 습격해 상당한 타격을 입힌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후 그는 7월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페르디난트]]가 지휘하는 영국-하노버-헤센-브라운슈바이크 연합군을 보강하기 위해 독일로 파견된 영국군 부대와 동행했으며 10월 20일 연합군 내 영국군 지휘관이 되었다. 1759년 8월 1일, 사크빌은 [[민덴 전투]]에서 영국인과 하노버인으로 구성된 우익 기병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이 전투 내내 명령 불복종을 일삼았다. 페르디난트가 영국 기병대에게 적진을 돌파하라고 명령했을 때 사크빌은 조금 진격했다가 도로 주저앉았다. 이에 페르디난트가 여러 차례 전령을 보내 진군 명령을 전했고 나중에는 진격하지 않을 거면 후퇴해서 다른 아군 부대가 지나갈 길을 열어주라고 명령하기도 했지만, 사크빌은 끝내 진격하지도 않고 후퇴하지도 않은 채 제 자리에 머물렀다. 결국 페르디난트는 사크빌의 지휘관 직책을 박탈하고 그랜비 후작 [[존 메너즈]]에게 영국 기병대 지휘를 맡기기로 했다. 이에 사크빌이 항의하자, 페르디난트는 차디찬 어조로 대꾸했다. >이제 기회는 지나갔소. 이후 영국으로 소환된 사크빌은 자신이 명령을 불복종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군사 재판을 요구해 1760년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유죄를 선고하고 그가 "어떤 군대로도 폐하께 봉사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판결한 뒤 영국 육군의 모든 연대에 판결문을 보내기로 했다. 결국 사크빌은 불명예 전역했으며 [[조지 2세]]에 의해 추밀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그는 7년 전쟁 내내 실의에 빠진 채 자택에 은거해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